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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읽을 만한 책이 변변찮던 어린 시절, 우연히 놀러간 친구집에서 미스테리로 기억되는 소설 전집을 본 적이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한두 권 빌려보게 된 것이 매일 그 친구 집에 가는 계기가 됐다. 어느날, 대가 없이 책만 빌려가는 내가 얄미웠는지 그 친구는 바쁜 척 대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읽고 싶어도 읽지 못하는 서러움을 초등학교 5학년이던 그때 처음 실감하고, 친구 집을 등지고 돌아오던 기억이 새삼 새롭다.
한 질의 전집이 전부이던 그런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기성 세대이면서 또 이 ‘바닥’에서 일하는 소위 전문 직업인으로서 요즘의 풍요 절정에 있는 아동 출판계를 보는 심정은 딱 두 갈래다. 부러운 마음과 아쉬운 마음. 읽고 싶어도 읽지 못했던 시절을 거친 세대가 볼 때에야 최근 범람하고 있는 아동 출판물들은 물질적인 풍요 이상의 좋아진 세상을 실감나게 한다. 그러니 요즘의 아이들이 당연히 부러울밖에...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아쉬움이 없는 것도 아니다. 책을 사주는 부모 입장에서 그 책이 다 그 책 같고, 책이라면 다 좋은 것 같을지 모르나, 모든 풍요가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필히 느껴줬으면 좋겠다.
하루에도 수백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현실에서 모든 책들이 아이들에게 유익하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러는 무책임하게 다듬어져 나온 책도 있고, 또 더러는 장삿속에 가까운 상술로 속는 기분이 들게 하는 책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전혀 근거 없이 포장된 홍보에 속는 ‘독자들’ 부모의 무분별한 책 선정방식에 있다. 사실 대형서점에서 집계되는 어린이 책 베스트셀러의 실질적 고객은 책을 읽을 독자, 즉 아이들이 아니라 대게 부모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입김이 다소 영향을 미치겠지만, 성인 책들과 달리 어린이 책은 소비층과 독서층이 달라 그 정확한 집계 자체가 모호하기도 하다.
KBS 대하드라마가 뜨면 안 읽히던 위인전 코너에 불티가 나고, IMF 시기에는 아이들까지 경제서를 읽어야 하는 중압감에 시달렸다.(한동안 어린이 경제서들이 상위 순위를 점령했었던 것을 서점을 찾는 부모라면 기억할 것이다.)
이러한 동향 가운데 최근 어린이 베스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인 베스트에서 흔히 지적되는 점들을 눈에 띄게 영향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인과 달리 아이들은 단순한 흥미만을 위주로 독서를 해서는 곤란하다. 자신은 유행 잡지를 보더라도 아이한테는 위인전기와 세계명작을 고집하는 것이 우리네 부모가 아니던가.
요 몇주간 교보문고 어린이 베스트 집계를 보았다. 단 한 권을 제외하고 9권이 만화물이다. 물론 <먼나라 이웃나라>와 같은 교양 만화물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책 홍수 속에서 책 선정의 어려움을 느낀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조야한 안목이라도 믿어보자는 심리를 발동, 아이들의 만화 선호 소비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렇다고 부모들이 그런 책들이 왜 나쁜지 설명하는 일도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 책들이 주는 말초적인 재미가 추상적인 설명을 훨씬 웃도는 영향력을 아이들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린이 책 비평가 최윤정 씨는 아이에게 읽힐 책을 선정해주기 위해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그들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녀는, 엄마가 읽고 쌓인 책들을 아이들이 호기심에서 들춰보기 시작한 것이 말초적이고 조야한 책들로부터 그들을 떼어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 책을 고르는 일이 귀찮은가? 어렵다는 말로 고쳐 얘기해도 결과는 같다. 오늘부터라도 내 아이에게 읽힐 책은 내가 먼저 읽어보자. 이 가을, 책 홍수 속에서 양질의 책을 찾아 아이에게 권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함께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멋지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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